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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 좋은 친구란? 덧글 0 | 조회 310 | 2015-11-05 00:00:00
관리자  

요즘의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겐 스마트폰이상의 친구가 있을까? 무엇이든 척척 해결해주는 해결사. 내 의문에 완벽한 답을 주진 못하지만 근접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것도 당장 빨리 해답을 준다. 민감성, 즉시성, 문제해결력 등등이 웬만한 친구보다 낫다. 시간절약되고 고민할 시간을 단축해주고 모르는 장소도, 길안내도, 맛집 검색도 심지어 친구까지도 만들어준다. 이와 함께 요즘 아이들에게 친구의 의미가 퇴색해진 건 아닐까 걱정스럽다.

친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좋은 친구, 나쁜 친구, 그저그런 친구, 그냥 좋은 친구 등등
나쁜 친구도 친구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친구가 붙지 않는가? 아들의 유치원시절의 대사가 생각난다. 자신이 다니는 유치원에는 ‘친구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아무 해결책도 없이 걱정하고 나이가 비슷하면 모두 친구라는 식상한 설명을 하며 아이 말을 못 알아듣고 전전긍긍했었다. 한끝차이였을 실마리를 찾지 못해 답답해하고 딴 집 애들과 왜 이렇게 다를까, 도리어 화만 내고 도와주지 못했다. 불만이 많고 투덜대는 듯한 아이, 그래도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림으로 마음을 풀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도. 

아이는 그냥 친구가 아니라 자신의 것과 친구의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 자기마음을 알아주는 좀 더 특별한 친구를 원했나보다. 엄마도 자기마음을 알아주길 원했을 것인데 딸아이와 달리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아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아들은 그냥 그런가보다. 내 아들이 그런 성격이야’ 하고 체념하듯 깨닫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요즘 말하길, 엄마는 말해도 모른다고. 딸아이들이 조곤조곤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는다면, 가타부타 말이 없고 불쑥 한마디 던져놓고 마는, 신체언어는 발달해있지만 언어표현은 많이 하진 않았다. 그러니 동성친구들은 몰라도 이성친구들과의 소통은 거의 힘들었으리라. 

좋은 친구를 생각하는 나이는 가정의 품에서 벗어나 부모와 어느정도 간이 독립을 하고나서인 것 같다. 학령전기인 유치원시절은 딱히 마음이 맞아서라기보단 친구가 뭔지도 모르고 자주 만나고 같이 놀 수 있으면 친구가 된다. 초등학교저학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고학년쯤 되면서 친구의 존재에 대해 점점 생각과 고민이 생기는 시기가 아닐까?

요즘엔 이성에 대한 눈도 빨리 뜬다. 초등학교만해도 커플이 많더라는, 우리 세대에선 상상할 수 없는 적응 안 되는 사실이지만 시대를 거슬러 올라 갈 순 없지 않은가? 얼마 전에 초등고학년인 아이가 학급에서 ‘이성친구 사귀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찬반토론을 하였는데 부모인 나도 사뭇 흥미진진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찬성과 반대로 나누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주장하는 것이다. 책읽기나 학습적인 부분에서 배울 수 없는 아주 유익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토론의 장점인 나의 주장과 그 근거에 대해 확실히 알 수도 있고, 반대 시각의 입장도 수용하고 이해를 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어느 안건에 대해 100% 찬성, 100% 반대라기보다는, 이성탐색을 미리 할 수 있고 나에게 맞는 성격은 어떤 유형인지 알 수 있다는 이런 부분에선 찬성하지만 아직 이른 시기이고 공부에 방해가 될 수 있어서 반대한다는 식이지 싶다. 찬성이든 반대이든 50%이상인 쪽으로 기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치우치면 아니함만 못하다고 하였다. 치우치지 않는다면 찬성이다.

정말 친구란 소중한 것이다. 다른 사람에겐 털어놓을 수 없는 사생활까지도 나눌 수 있는 존재. 주변에 좋은 친구 하나만 있으면 인생을 살맛이 난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와는 어떤 이야기꺼리도 즐거운 대화가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얼굴마주치기도 싫지 않은가. 그런가하면 한 달 전, 일 년 전에 만 난 친구와 할 말이 많을 것 같지만 어제 만난 친구사이가 더 할 말이 많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이 놀랍다

우리는 평생 누군가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할 사회적 동물이다. 주변에 좋은 친구가 없다면 좋은 친구가 되어 주자. 무엇보다 마음이 맞아야하고 라이프스타일이 맞아야겠지만. 서로의 시간을 맞출 수 있어야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기꺼이 내 것을 조금 내려놓고 서로 조금씩 양보할 수 있어야 만날 수 있다. 너무 한쪽 주장이 강하다보면 오래가지 못한다. 너무 양보해도 그렇다. 적당한 선에서 취합이 가능해야한다. 너무 인기가 많고 바쁜 친구는 만나기가 힘들다. 너무 들떠있거나, 우울한 친구도 버겁고 너무 돈을 안 쓰는 친구도 밉상이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해야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고뇌, 근심 다 비우고 그냥 지금 여기 훈훈함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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